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드루 2세(브라질) (문단 편집) == 평가 == 페드루 2세는 공화국 직전의 군주이지만 훌륭한 내치와 업적, 노예제 폐지 추진 등으로 인해 '''브라질에서 매우 평가가 좋은 지도자'''다. 페드루 2세를 강제 퇴위시키고 세워진 [[브라질 제1공화국|공화 정부]]는 민주적이지 않았고[* 애초에 이 공화정부는 황제가 추진한 노예제 폐지를 비롯한 개혁들에 반대해서 반란을 일으켜 세워진 것이었다. 황제는 이 쿠데타를 짓밟을 수 있었음에도 국가를 분열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폐위를 받아들이고 브라질을 떠났다.] 이후로 브라질은 페드루 2세의 마지막 숙원이었던 [[토지개혁]]을 하지 못한 채 심심하면 [[쿠데타]]가 일어난 데다 경제 위기와 헌정 위기까지 여러 번 있었다. 페드루 2세는 유능한 행정가였고, 심지어 본인이 '''군주제를 계속 유지할 의지도 없었다.''' 페드루 2세에게는 이자베우 공주가 후계자로 있었고 딸을 굉장히 유능하다고 인정하였으나, 브라질의 분위기에 여황제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헌법에서 여성 후계자를 제한하는 내용은 없었지만 이자베우 공주 본인부터가 제위 계승을 원하지 않았고 지지세력을 만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딸 모두 페드루 2세의 사망과 함께 자연스레 브라질의 제정도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또한 이자베우 공주가 프랑스 귀족과 결혼한데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점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페드루 2세에 대한 여론이 좋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페드루 2세가 군주제를 유지할 의지가 없었던 이유는 아버지 [[페드루 1세(브라질)|페드루 1세]]가 고국 포르투갈을 배신하고 브라질을 독립시켜서 브라질 제국을 건국하면서 브라질 의회에 의해 퇴위되기까지 길지 않은 치세 동안 브라질 내외부의 정치적 외교적 분쟁에 휘말린 극도의 불안정한 모습을 지켜봐온 것도 있고, 자국인 브라질은 본인이 퇴위하기 전까지는 본인의 치세에서 안정화되기는 하였으나 모국인 포르투갈이 누나 [[마리아 2세]]와 숙부 [[미겔 1세]]의 치열한 왕위 쟁탈전을 어린 시절부터 봐 오기도 했고 누나 마리아 2세의 죽음 이후 외조카 [[페드루 5세]]-[[루이스 1세(포르투갈)|루이스 1세]] 때 잠시 안정화되었지만 자신의 말년에 외조카손자 [[카를루스 1세]] 때부터 포르투갈 정치권이 정치적 외교적으로 다시 갈등과 불안정에 휩싸이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군주제를 유지하는 것에 환멸감이 든 것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